일본 영화를 한창 보던 때, 내게 보내준 영화 한편.
노다메가 너무 좋아서 우에노 쥬리가 나오는 영화라 반색했지만
보고 나서는 영상과 대사가 계속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한동안 우울했었다.
포스터는 참 밝고 제목도 예쁘지만 보는 내내 우울함이 가득하다.
첫 시작부터가 결말이고 단지 그 과정을 쭉 보여주기때문에 더 궁금할 것도 없다.
그저.. 바보같은 남자를 짝사랑하다가 말도 못한채 사고로 죽은 아오이와
아오이가 죽고나서야 사랑임을 알게된 진짜 바보같은 토모야의 이야기일 뿐.
그냥..그럴뿐인데 이상하게 묘한 여운이 계속 남는다.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홀스트의 목성과 함께.
그중 가장 오랫동안 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던건 이 영화속의 영화 "The end of the world"다.
영화감독 지망생인 아오이가 대학교 때 직접 찍은 영화다.
7일 후에 지구에 운석이 떨어져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차분하게 모든 사람들이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미유키의 남자친구는 이틀 먼저 운석을 볼 수 있는 남극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 제일 먼저 보여주겠다고 한다.
지구 최후의 그 순간이 다가오지만 하루전에 오겠다던 남자친구는 그 순간이 다 되어서야
겨우 미유키 앞에 나타난다.
예정된 시각에 세상은 끝이 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과 미유키의 독백.
'끝난 것은 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멍해졌다.
트루먼쇼를 보고 났을 때처럼.
그냥..그렇다고.
그리고 오늘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이 장면.
아오이가 미국에 유학을 간다고 토모야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꼭 가야할 절실한 이유도 없지만, 절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아오이에겐 자신의 선택이 토모야에게 달려있다.
" 가지말라고 하면 분명히 안갈 것 같아. 계속 곁에 있어 달라고 하면 다 포기하고 곁에 있을거야 "
라고 말하는 아오이에게 토모야는 말한다.
"일본에 있으면 되잖아."
비겁하다, 토모야. 눈치채고 돌려말한거지?
이 영화에서는 마지막에야 알아차린 것처럼 나오지만 내가 보기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대답을 회피하려는 정도로 밖엔 안보인다.
얼마나 마음이 무너졌을까.
억지로 눈물을 참는 저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토모야가 잡았더라면 미국에 가지 않았을텐데..
그러면 아오이가 비행기 사고로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럼 뒤늦게 자신의 사랑을 깨달은 토모야도 마음아플일 없었을텐데..
애매모호한 말로 확실하게 붙잡지 않은 토모야를 두고 아오이는 떠난다.
그리고 나중에 토모야에게 전해진 아오이의 진짜 마음.
하지만 항상 후회는 늦은 법이다.
" 우유부단한 점도 좋아.
근성없는 점도 좋아.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것도 좋아.
둔감한 점이 좋아.
웃는 얼굴이 가장 좋아. "
남들이 보기엔 결점인 것들도 다 좋게만 보일 때,
다 감싸줄 수 있을 때가 진짜 좋아하고 있을 때겠지.
사랑의 가장 큰 조건은 다 감싸안을 수 있는 이해,
그리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인 듯.
아오이처럼 너무나 좋아함에도 마음을 끝내 얻지 못하고 전하지도 못한다면..
토모야처럼 가까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자신의 마음이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면..
사랑은 역시 타이밍이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마구 뒤엉켜 일관성없는 글이 되어버렸지만
앞으로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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